책 소개

무엇이 상처를 낫게 하는가?

야생의 동물들은 몸에 상처가 생기면 어두운 은신처로 숨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본능적으로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바위나 풀밭을 찾아 몸을 누이고 상처 부위를 빛에 노출시킨다. 동물들도 빛이 상처를 낫게 한다는 걸 아는 셈이다. 햇빛의 자외선은 상처를 소독해 세균이나 곰팡이균을 억제하고, 특정 파장은 미토콘드리아를 자극해 에너지원인 ATP 생성을 촉진한다. 체온이 오르면 면역 세포가 활성화되고 자가 치유력도 함께 올라간다.

성경에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치료하는 빛이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에너지라는 사실을 생각하곤 했다.

나는 외과의사로서 30년이 넘도록 수술실을 지켜왔다. 날카로운 메스로 환부를 도려내고 정교하게 상처를 봉합하며 환자의 생명을 살려내는 일이 내 일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 한구석에 현대의학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 싹텄다. 나는 똑같이 자르고 똑같이 꿰매는데, 누구는 아무 문제 없이 잘 낫고 누구는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 수술해도 새살이 차오르고 상처가 아무는 건 내가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의 영역이 아니었다. 인간의 손길 너머에 존재하는 오묘한 치유의 생명력은 분명히 있다.

동물들이 치유를 위해 햇빛 아래로 나가듯, 우리도 아픈 상처를 부여잡고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 사진을 흔히 ‘빛의 예술’이라 부른다. 어둠에 한 줄기 빛이 쏘여지면 그제야 드러나는 피사체는 빛이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그 빛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삐뚤어지고 상처 입은 우리 마음도 나음을 얻지 않을까.

내가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1998년이다. 우연히 얻게 된 미놀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셔터를 눌러 대던 시간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사진을 찍을수록 어떻게 찍는 게 잘 찍은 사진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남들처럼 멋지게 찍을 실력은 못 됐지만, 다른 사람의 작품을 흉내 내기보다는 나만의, 나를 나타내는 사진을 찍고 싶었다.

여기에 실린 사진들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거의 3년 동안 직접 찍은 것들이다. 사진을 보면서 그 안에 묻어 있는 내 감정과 느낌, 그리고 내 삶과 연결되는 깨달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이 기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서 그 무렵 유행하던 인터넷 플랫폼 몇 곳에 사진과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신경을 못 쓰고 있다가 십 년쯤 지나서야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올려둔 글이 백 편이 넘어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하나 채워 나간 이 기록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게 된 건 내게 큰 영광이다.

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독자의 마음에, 삶의 모진 풍파로 입은 크고 작은 상처 위로 조용한 빛의 손길이 닿기를 소망한다. 그 빛이 지친 영혼을 다정하게 감싸 안고 평안한 안식으로 이끌기를 기도한다. 이 책은 지친 영혼에게 선물처럼 건네는 작은 응원이자, 빛에게 부치는 연가(戀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