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배반 - 르네 마그리트 > 정중동

본문 바로가기

정중동

이미지의 배반 - 르네 마그리트

페이지 정보

작성자소겸 댓글 0건 조회 291회 작성일 20-04-01 22:36

본문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이자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해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흔한 파이프가 그려져 있지만 그 아래에는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관습에 따르면 파이프를 재현한 그림 속의 파이프는 파이프가 맞지만, 마그리트는 관습적 사고방식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림과 문장을 모순적으로 표현하였고 미술가가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는 없다고 역설한다. 

이미지와 말

그려진 이미지는 통속적 재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화가가 사물을 보는 방식과 그리는 기법, 즉 자신의 눈과 손을 통해 포착된 자신의 몸, 그 화가 개인을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화는 증명사진처럼 동일성의 의미를 전하지 않는다. 회화의 목적은 외형적 현실 자체가 아니라 현실 이면에 있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비밀에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에 그려진 이미지는 언제나 사유의 이미지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그것이 이미지로서 갖는 고유한 상황을 반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가시적 환영이라는 의미에서, 현실 묘사를 위한 단순한 외관의 재현이 결코 아니다. 특히 이미 친숙하기 때문에 이름 붙여질 필요 없는 것을 이름을 붙이고 그것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부조리한 표현을 하였으며, 거기에서 단지 결정되지 않고 얽매이지 않은 상황에 놓인 파이프의 재현밖에 없다. 이미지와 문구는 긴밀한 관계에 있어도 그 문자의 주장이 허위인지 진실인지 말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미쉘 푸코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뎃상’일 뿐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이것은 파이프다’ 라고 말하고 있는 문장이고,‘파이프가 아니다’란 문장은 ‘파이프’가 아니며,‘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문장에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며, 그림, 쓰여진 문장, 파이프의 뎃상, 이 모든 것 ‘파이프’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미지가 대상인 사물, 오브제를 나타낼 수도 있고, 잘못된 언어와 결합하면 이미지가 심지어 오브제 그 자체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말과 이미지의 관계의 임의성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이미지와 글귀가 명백히 연관되어 있더라도 글귀의 내용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즉, 언어의 임의성이란 문제 외에도, 그려진 대상은 2차적인 물체일 뿐이고, 현실의 환상적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한다.

작품해석

위에 보이는 그림처럼 그려진 파이프를 가지고는 담배를 피울 수 없다. 따라서 그려진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다. 이미지와 대상 사이가 그런 것처럼, 말과 대상 사이에는 정의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간극이 존재한다. 마그리트는 이미지와 말을 통해 실재를 포착하고 이 두 보완적인 체계들의 협력을 통해 실재를 단단히 붙들어두는 장치를 구성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말에 대한 내적 거리와 이미지에 대한 외적 거리를 이용하여 잠에서 깬 상태에서 지각할 수 있는 꿈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사유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두개의 언어(시각적인 것과 말로 되어 있는)가 서로 무효화시키도록 만들고 있다. 그 자신은 자신의 그림이 "생각의 자유에 대한 물질적 기호로서" 여겨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자유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정의를 내렸다."삶, 우주, 무한한 공간 등은 생각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경우에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한다. 그것에 대하여 가치를 지니는 유일한 것은 의미, 즉 불가능한 것들이라는 정신적 개념이다."

그의 이런 방식은 전통적인 묘사방식을 부정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파이프 그림이 파이프 자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에 놀라는 자신을, 관람자는 발견 하게 된다.

실체와 명명

두 개의 비밀(The Two Mysteries) 1966년, Oil on Canvas,65 x 80 cm, 브뤼셀 이시 브라쇼 미술관

마그리트는 이미지와 말을 통해 실재를 포착하고 이 두 보온적인 체계들의 협력을 통해 실재를 단단히 붙들어두는 장치를 구성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말에 대한 내적 거리와 이미지에 대한 외적 거리를 이용하여, 잠에서 깬 상태에서 지각할 수 있는 꿈을 보여주는 비밀, 저 손상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차이, 독창적인 사유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말(言)은 가시적인 것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 개념 자체에는 말의 특성이 전혀 없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말(馬)이라는 '개념'과 이 피조물 사이에는 오로지 추상적인 관계만 존재한다.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말(言) 또한 언어의 본성과 그것이 언급하는 사물 사이의 차이를 가지고 게임을 한다. 또 다른 예로 '센 강'이라고 쓰인 말은 파리를 연상시키지만 이것은 실제적이지 않고 단지 추상적인 과정일 뿐이다.

파이프의 재현물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것으로 우리가 명명하는 것과 그 실체는 엄연히 다를 수 있다는 간단하고 평범한 결론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것은 마그리트가 거듭 언급하는 세속적인 비밀을 그만큼 더 감추고 있다. 대상을 지시하는 말도 대상을 그린 그림도, 대상이 실제 존재한다는 점을 우리로 하여금 확신하게 할 수 없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